[프리은월] 달이 보이지 않는 탁한 하늘
은월의 오늘 키워드는 별이 보이지 않는 탁한 하늘,침대 위 (으)로 배경, 우산,꿈,물에 젖은 머리, 을(를) 키워드로 해 연성을 하도록 합니다. https://kr.shindanmaker.com/378234
별이 아니라 달로 ㄱㄱ
설정 주의.
프리드가 살아남았고, (프리드만) 은월을 기억한다는 설정. 그리고 검마는 행방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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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보이지 않는 탁한 하늘
‘그는 사랑을 알지 못했다. 아니,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불우했던 그의 과거 때문일까 그는 도통 제 감정에 무감각했다.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느꼈던 감정은 아마 원망, 슬픔, 좌절, 절망 이 넷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기야 제 목숨을 바쳤는데 이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할 일은 없을터였다.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자츰 서늘한 사슬처럼 내 목을 옥죄어 왔다.’
..이건 빼야겠지?
“프리드. 시그너스 여제가 부르는데 갈거야?”
멈춰있는 제 뒷편에서 나지막히 메르세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번에 급증한 몬스터에 대한 것이겠지. 알겠다며 간단한 답을 전한 후에 다시 깃펜을 잡았다. 아, 뭐였더라.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침식되어 들어갔다. 오랫동안 얼어 있었더니 뇌가 썩어버린 고깃덩어리라도 되었나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며 한 손가락으로 지긋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몇 초? 아니 몇 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 움직임도 없자 메르세데스가 어느새 제 옆으로 와 프리드? 라며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아, 괜찮아. 걱정하게 해서 미안.”
그제야 메르세데스는 살풋 웃으며 빨리 준비하라는 말을 꺼냈다. 헤네시스에서 에레브까진 시간이 걸리니 조금 서둘러야하나? 제 옆에 놓인 포션과 주문서따위의 것들을 닥치는대로 가방에 쑤셔 넣었다. 두둑해진 가방을 보며 조금 빼야하나 고민을 잠시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고 다시 저가 쓰고 있던 일지에 눈을 돌렸다.
이번에는 시간이라도 맞춘건지 눈길을 돌리자 마자 부엌 쪽에서 에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리드님! 저희 지금 출발할거에요. 빨리 오세요!”
그래, 아직 나에겐 너희들이 있지. 두둑하다 못해 빵빵해진 가방을 제 몸에 걸치고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깃펜을 내려두었다. 곧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잉크가 흩어져 내렸다. 이제 그 방엔 아무도 없다.
*
“헤헤 오랜만의 외출인 것 같아요!”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꽤 시끄러운 시내인데도 카랑카랑하게 잘 들리는 목소리가 노래도 잘 부를 성 싶었다.
“에반...외출은 맞지만 일단 임무가 아닐까?”
외출이란 표현을 고쳐주니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바뀐 에반을 보니 웃음이 살풋 나왔다. 그래, 다음엔 같이 시내라도 가자. 남모를 말을 중얼거리자 에반이 네? 라며 눈을 빛내왔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말을 갈무리했다.
“엇 에레브가 보이네요! 금방 도착하겠어요.”
왜인지 모르게 우중충한 분위기 속 에반의 목소리가 분위기를 띄웠다. 에레브. 하늘에 떠 있는 섬.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안개에 가려진 에레브는 무언가 숨기고 있는 느낌이 강했다. 레지스탕스와 시그너스 기사단, 그리고 저와 제 동료들이 함께할 회의를 생각하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듯 했다.
*
생각보다 회의장 내는 조용했다. 예상보다 다른 회의장의 분위기에 살짝 당황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제 자리에 앉았다. 시그너스 여제와 그의 기사단들은 먼저 와 있었고, 저와 제 동료들 다음으로는 레지스탕스가 왔다.
“회의를 진행하죠.”
사회자 역할을 맡아보이는 듯한 헬레나가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회의 내용은 역시나 저가 예상한 대로 최근 급증한 몬스터에 대한 것이었다. 먼저 시간의 신전에 다녀온걸까, 듣기만 하던 이카르트가 특히 시간의 신전 내부로 들어갈 수록 몬스터의 수가 많았다고 하였다. 이에 시그너스 여제는 시간의 신전에서 과거의 문 내부쪽은 아예 들어갈 엄두도 못낼 정도로 몬스터가 많다며 걱정이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
저와 제 동료들은 이내 고민에 휩싸였다. 도와주어야하긴 해야할텐데 각자 쌓인 일이 워낙 많아서 그런 것이었다. 아무도 말이 없자 헬레나가 다른 주제로 넘어가겠다고 말문을 여는 순간, 팬텀이 자신들이 도와주겠다며 말했다. 모두 당황한 표정으로 팬텀을 쳐다보았지만 내심 스스로도 도와줄 마음이었기 때문에 웃으며 넘겼던 것 같다.
“그럼, 시간의 신전은 영웅분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해요. 팬텀님.”
그리도 아리아 여제의 친척에게 칭찬받는 것이 좋은 것일까. 제가 본 팬텀은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 있었다. 시간의 신전...몬스터를 잡기 까다로운 곳은 아니었지만 ‘그’ 때문일까, 가기 찝찝한 곳이었다.
*
“참 오랜만이네. 여기도.”
팬텀이 휘파람을 불며 시간의 신전 입구로 들어섰다. 퀘퀘한 공기가 어서 오라는 듯이 저를 맞이했다. 좋지 않은 공기에 인상을 찌뿌리자 에반은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잔뜩 예민해진 메르세데스가 에반에게 말했다. 에반, 여기 공기 안 좋지 않아? 에반을 제외한 모두가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자 에반은 또 다시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네? 여기 공기 괜찮은 거 같은데...제 코가 이상한 건가요?”
라며 제게 말했다. 하하...이상한 건 너가 아닐지도 몰라. 헛웃음을 흘리며 대답하자 에반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웅분들이시군요. 시그너스 여제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지금 뭐라도 대접드리고 싶으나 몬스터들이 너무 많아 포탈을 비집고 나올 수도 있어서 그럴 겨를이 없군요. 죄송합니다.”
신전 관리인이 저에게 다가와 말했다. 포탈을 비집고 나온다고? 그런 경우는 생전 들어보지를 못했다. 위험하다는 낌새를 눈치챈 제 동료들이 모두 무기를 고쳐잡았다. 신전의 관리인을 지나쳐 문제의 문인 과거의 문으로 향했다. 과거의 문 포탈에 서 있기만 해도 검은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나와 다리를 붙잡는듯 했다. 언짢은 표정으로 서 있자 신전 관리인이 어쩔 줄 몰라하며 허둥지둥거렸다. 루미너스가 괜찮다며 신전관리인을 진정시켰다. 과거의 문으로 들어섰다.
*
몬스터의 수가 차고 넘쳤다. 각자 6000마리 쯤 죽였을까 모두 체력이 바닥나 몬스터가 올라오지 않는 곳에 앉아 포션을 마셨다. 고요한 맵 속 포션을 꿀꺽거리며 마시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몬스터가 너무 많군.” “그러게. 검은 마법사랑 대적할 때보다 더 힘든 거 같기도~” “..검은 마법사랑 싸우실 때는 이것보다 더 힘들지 않으셨어요?” “음..생각해보니 이것보다 한 오천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아.” “허억....” “팬텀. 에반한테 그런 장난 하지 말라고 했지?”
동료들이 장난 치는 도중에 제 눈길은 그 다음 맵을 향해 있었다. 대화에 도통 끼지 않는 저를 보며 팬텀이 말했다.
“우리 대마법사님은 무엇을 찾고 계시나?”
...그러게. 팬텀이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일어섰다. 다시 무기를 재정돈하는 모습이 마치 검은 마법사와의 전투같아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다시 망각의 길로 들어섰다.
망각의 길은 추억의 길, 후회의 길보다 몬스터가 많았다. 얼마나 많았냐면..아마 살아생전 저가 죽인 몬스터들의 원혼들이 환생해 죄다 이곳에 모인 듯 했다. 들어갈 엄두도 못낸다는 말이 이제 뭔지 알겠군. 루미너스가 조용히 읊조리자 메르세데스가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샌님이라는 말을 꺼내며 놀렸을 팬텀조차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아 팬텀도 꽤나 지친듯 했다.
“이제 마지막 맵인가?”
고개를 끄덕이는 루미너스를 보며 포션을 한 번 입 속에 털어넣고 포탈로 들어섰다.
*
마지막 맵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몽환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가 내리는 천장을 보니, 천장이 없었다. 뚫려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터였다. 다른 곳보다 더 넓은 맵에는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달이 보이지 않는 탁한 하늘, 추적추적 내리는 비, 고요한 신전. 몬스터가 수두룩한 곳보다 이곳이 훨씬 위험하다는 제 직감이 몸을 지배했다. 그런 직감과는 달리 뇌는 전진하라며 미칠듯이 외치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도달한 곳에는 흰색 망사 커튼으로 둘러싸인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비가 그대로 망사를 뚫고 침대를 적셨을만도 하건만 왜인지 침대는 젖지 않았다.
모두 침대 바로 옆에서 무기를 고쳐잡고 이제 어떻게 하냐며 입을 모았다. 누가 한 명 열어봐야할 것 같은데...저가 혼자 읊조리자 모두 팬텀을 쳐다보았다. 자, 먼저 시간의 신전에 오자고 한 장본인이 열어봐야지. 팬텀은 절대 싫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쉬곤 한 손으로 커튼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팬텀은 침대 안을 슬쩍 확인하고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았다. 멍청하게 팬텀을 쳐다보고 있자 팬텀이 제게 말했다.
“프리드. 여기 사람이 있는데?”
*
사람? 시간의 신전 내부에, 그것도 몬스터가 한가득한 곳에 사람이 있을 수가 있나? 아니지. 애초에 여기에 왜 침대가 존재하는 거지? 천장은? 올때는 화창했는데 왜 지금은 비가?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나? 왜 달이 없는거지? 우리는 분명 아침에 왔는데?
자신을 압박해오는 질문들에 프리드는 고개를 한 번 내젓고는 떨리는 손으로 커튼을 열어 젖혔다. 순간, 시간이 정지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옥죄어 왔던 질문들은 모두 사라지고, 떨리던 손은 더욱 더 떨렸으며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그 순간 저에겐 ‘그’만이 존재했다.
보다 못한 동료들이 저를 만지자, 그 환상은 조각조각 깨지기 시작했다.
“프리드?”
두근거리는 심장과 뇌를 무시하고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루미너스와 에반이 저를 제치고 침대 안의 사람에게 다가갔다.
긴 흑색 머리. 확인 할 수는 없지만 아마 깊은 자안, 투박한 손, 그 복장. 모든 것이 제가 기억하고 있는 ‘그’와 같았다. 도대체 왜 그가 이 곳에 존재하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여기에, 저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이 눈이 뻑뻑했다.
그래, 마침내 저는 그를 만나고야 말았다. 저를 구원했음에도 내버려두었던 ‘그’를. 달이 없는 탁한 하늘에 마치 숨은 듯 침대 위에서 숨죽이고 있는 그를.
Fin.